SANTI

2019 국제 레지던스 입주작가

프로필

1997-1998  멀티미디어 제작 전문가 
                  상급예술연구원
1988-1989  파리1대학, 연극영화과 박사수료
1984-1988  파리10대학 문학석사 (Equivalence)
                  페루 리마대학교 언론정보학 학사

주요경력

2018   “De Armas, 최후의 따이노”, “무장한 예수의 유토피아와 드라마” 전시 중에서,
           하바나 미술관, 쿠바
2012  “포르투칼 누나”, 리마극장 상연. 페루
           “영원한 발레이오”, 런던대학교, 영국
2011  “Eternal Vallejo(영원한 발레이오)”, 리콜레타 센터,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2010  “Financial Crisis(금융위기)”, 월드뱅크 전시, 워싱턴, 미국
           “Eternal Vallejo(영원한 발레이오)”, 리마 카톨릭센타
2009  “The Sea of Darkness(어둠의 바다)”, 프랑스의 해, 브라질 상파울로 기념관
          “Tropical Bla Bla(열대의 블라블라)”, 제 8회 하바나 비엔날레

FORMATION 

1997-1998  Spécialiste de Production multimedia
                     Institut d’Etudes Supérieures des Arts
1988-1989  DEA Etudes Théâtrales et Cinématographiques Université Paris I.
1984-1988  Maîtrise-ès-lettres, Université Paris X (Equivalence).
                   Licence en Sciences de la Communication, Université de Lima, Pérou.

EXPOSITIONS 

2018  «  De Armas, le dernier Taïno  », dans le cadre de l’exposition “Drama et   
           Utopie de Jesus de Armas, Musée de Beaux-Arts, La Havane
2012  «  La Religieuse Portugaise  », mise en scène, théâtre, Lima.
           «  Vallejo Eternel  », University College of London.
2011  “Vallejo Eternel”, Centro Recoleta, Buenos Aires.
2010  “Crisis financière”, exposition Banque Mondiale, Washington.
           “Vallejo Eternel”, Centre La Catolica, Lima. 
2009  “La Mer des ténèbres” dans le cadre de l’Année de la France au Brésil,  
           Memorial de Sao Paolo.
           “Bla Bla tropical”, 8e Biennale de La Havane.

인터뷰

Q) 인물을 쫓아가는 과정은 어땠는지.
A) 하 대표를 처음 만났을때 한국의 평범한 여성은 아니라고 느꼈다. 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고 참여의지가 높았는데 이 부분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사회참여적인 여성, 자신의 영역에서 맹렬히 일하는 여성의 모습을 촬영했고 프로젝트화했다. 촬영을 진행하면서 주제가 점점 확실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보통은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매우 천천히 작업하는 스타일이지만 레지던스 기간이 짧은 관계로 짧은 시간에 작업을 마무리해야 했다. 내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언어였고 어떻게 소통할 지가 관건이었는데 마침 다행스럽게도 하 대표와는 언어 문제가 없었고 촬영할 때도 여러 보조 역할들을 해주어 원활하게 진행이 됐다. 작업은 아직 미완성이지 앞으로 더 진척시켜 완성해볼 생각이다.

Q) 촬영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궁금한데.
A) 레지던스 기간이 두 달이었는데 이는 기획, 구상, 촬영, 제작까지는 매우 짧은 시간이다. 이 기간 동안 촬영을 하는 것은 매우 밀집된 작업이다. 
그럼에도 이 기간 중이었던 10월 16일 부마민주항쟁 40주년기념식이 있었고 이날은 대통령까지 참석하는 큰 행사였다. 이때 직접 촬영이 가능했는데 운이 좋았던 건 하 대표의 가족이 모두 모이는 날이어서 '3세대'를 모두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아버지가 계시고 아버지와 관계된 딸, 그리고 딸의 자녀들까지 3세대를 보면서 이런  움직임이 일어난 분위기, 느낌이 잘 와 닿았다. 
또 다른 시각으로 보면 '3세대'는 한국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를 찍으면서 우연히 만난 청년은 연극을 하는 친구였다. 그는 항쟁을 일으킨 전 세대 인물의 역할을 맡았던 배우인데 기억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큰 관심이 있었다. 나는 그 청년에게서 성공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다 바치는 요즘 한국 청년들의 모습과는 다른 인상을 받았다. 

Q) '3세대'가 남긴 것 그리고 앞으로 남은 작업은.
A) 영화의 주인공은 현대적이면서도 사회참여적 인물이다. 페미니스트이기도 한 이 인물을 보면서 나로서는 만족스러웠다. 이 인물이 한국의 역사를 바꾼 사람이어서이기도 했고 스스로가 역사를 바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서 더 그랬다. 
이번에 본 한국적인 것들 한국 전통음악, 무용, 서예 등은 매우 즉흥적이고 순간적이었지만 내게는 매우 다양한 경험이었고 한국의 한 단면을 본 듯한 상징성을 가진다. 
프랑스로 돌아가서 남은 작업들을 마무리해서 작품을 완성시키고 싶다. 

interviewee : 산티 제가라
interviewer : 손상민

Q) 본인이 직접 자기 소개를 한다면.
A) 나는 페루출신으로 다큐멘터리 작가 겸 감독이다. 1984년 파리로 유학왔고 문학, 연극영화 그리고 멀티미디어를 전공했다. 그리고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며 느낀 문화적, 감성적인 차이, 해외에서 이민자로 예술가로서의 고민과 성소수자로 사는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왔다. 최근 다큐멘터리: Re-naissances(르네상스)는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이민자이자 성소수자(LGBT)의 이야기를 담았다. 적대적인 세계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려고 노력하는 트렌스 젠더의 이야기와 이방인들의 정체성에 대한 담론을 담은 프로젝트를 꾸준히 계획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에서 거주하며 작업 중이다.

Q) 리좀 레지던시에 참여한 계기가 궁금하다.
A) 작년 2018년 10월 파리에서 아주 재미있는 전시가 있었다. 바스티유 디자인센터에서 열린 전시였는데 제목이 <5대륙의 얼굴들>이란 타이틀의 전시였다. 하효선 대회장과 심은록 큐레이터가 조직한 전시였다. 파리의 FIAC, 파리국제아트페어와 같은 시기에 열린 전시였는데 5대륙에서 약 70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전시였다. FIAC 시기에 이런 귀한 전시가 있다해서 보러갔는데 전시가 매우 알차고 규모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간 익히 이름을 알고있던 한국작가 백남준, 문신, 권순철, 한홍수, 손석, 홍일화 등등  파리에서 활동했거나 한 중요한 한국 작가들도 많이 참여한 전시였다. 그리고 또한 장르도 다양해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전시였다. 며칠을 이어서 가 보았고 볼수록 매우 흥미로웠다. 마침 심은록 큐레이터와 하효선 대회장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하효선 대회장은 한국에서 왔고 또 창원에서 국제 레지던스를 운영한다고 했다. 두 사람과 친하고 싶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기회가 된다면 레지던스를 하고싶다고 했고 2019년 3월에 많은 자료를 제출하고 선정이 되어 참여하게 되었다. 두달이 쏜살같이 지났고 매우 아쉽지만 이제 벌써 돌아가야할 시기이다. 아직 작업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아 파리에서 완성해야하지만 매우 보람있고 즐겁고 유익한 기간이었다. 한국에는 또 오게될 것 같다.  

Q) 전시 작품에 대해 소개한다면.
A) 제목이 '3세대'이다. 나는 영상을 만들 때 사회와 관련한 문제제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번 영상에서도 이는 매우 중요한 이슈였다. 내가 방문한 올해가 하필이면 부마민주항쟁 40주년이어서 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고민이 됐다.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았기에 한편으로는 두렵기까지 했다. 
나는 외국인이어서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탓에 처음 한국에 와서 부마민주항쟁이라는 주제로 촬영하는 일에는 굉장한 어려움이 따랐다. 옛날 것을 그대로 복기하는 것은 흥미롭지 않았고 그대로 보여주는 일 역시 가치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유명하지 않은 소시민을 통해 그 당시의 큰 흐름을 의미 있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큰 사건이나 운동이 있었을 때 익명의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가는 지가 내게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Q) 제작 과정에 대해 알려달라.
A) 그러한 생각을 바탕에 두고 적합한 인물을 찾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외국인이어서 접근이 쉽지 않았는데 하효선 대표를 오랫동안 천천히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적합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효선 대표는 부마민주항쟁에 직접 참여했던 인물이었고 우연히 듣게 된 3.15 항쟁에 참여한 아버지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하효선 대표를 통해 '세대'를 엮는 건 어떨지 구체적으로 생각했고 영화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쫓아가면서 세대가 변화하는 걸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3세대

비디오아트, 20'  2019-2020 

나의 창작 비디오 이름은 ’3 세대’다. 한국 여성 하효선이 조국의 정치적 변동 속에서 자신이 거쳐 왔던 독특한 도정을 얘기한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사를 얘기함으로써 한국의 일반 역사를 환기시킨다.

3 GENERATIONS

Art Vidéo, 20'  2019-2020

  Ma création vidéo s’intitule 3 Générations, donc Hou Sun Ha nous raconte son parcours singulier d’une femme coréenne engagée avec l’évolution politique de son pays. Elle évoque l’histoire familiale dans la grande Histoire de la Corée du Sud. 

프로젝트의 기원

  나는 페루 출신 프랑스 작가로서 파리에서 활동 중이다. 나는 리마대학교와 소르본느대학교에서 수학했다. 나는 사진과 비디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서 세계 도처에서 예술작품을 창작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나 자신을 탐구한다.
  나는 아시아 대륙에 매료되어 있는데, 나의 증조모는 중국인이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내가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 나는 북경의 주변인들에 관한 <천안문 광장>이라는 아트비디오를 만들었다. 이들은 이 상징적인 공간에서 하루 종일 배회한다. 이어서 <영광의 삶>이라는 아트비디오에서 필리핀계 젊은 여성 노동자들을 다루었다. 이들은 홍콩의 금융 중심지에 모여 고독을 떨쳐버린다.  
  ACC프로젝트의 리좀 예술인 레지던스를 관장하는 하효선 예술감독으로부터 초청을 받자말자 즉각 수락했다. 나로서는 미스터리하고 미지의 나라 한국을 발견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에스빠스 리좀에 도착한 후 곧 창동이라는 구역을 발견했지만 거주 초기에는 명백한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한국어를 전혀 모르고 이 구역의 사람들 대부분은 영어를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길을 잃곤 했다. 이 도시의 모든 신호체계는 한국어로만 쓰여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나의 맨 먼저 하고자 한 것은 거리의 사람들과 완벽하게 녹아드는 것이었다. 나는 이 구역 안에 있는 대형 시장을 빈번하게 찾았다. 구글 번역기 덕분에 사람들과 조금씩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내 생각에 어쩌면 그들은 내가 길을 잃었거나 도움이 필요한 처지에 있는 것으로 보았지 않나 싶다. 사람들은 내가 캄보디아나 베트남 사람이 아닌지 물었다. 재미있었다!  
  예술인 레지던스와 관련해 하효선 씨는 나에게 40주년을 맞은 마산의 부마민주항쟁에 관한 비디오 창작을 제안했다. 처음에 나는 전혀 자신이 없었다. 한국의 역사를 잘 모르는데다가 정치적인 성격이 뚜렷한 주제를 두고 피상적인 창작에 그치는 짓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하효선 씨에게 이 사건에 참여했던 한 인물과 접촉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의 증언을 바탕으로 이 프로젝트의 줄거리를 창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며칠이 지나도록 기다리는 인물을 만나지 못했다. 이 레지던스에 같이 참가한 크리스틴 까두르는 하효선의 오랜 친구인데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찾는 인물이 바로 당신 앞에 있어요. 당신은 모르겠지만 효선은 1979년 항쟁에 참가했어요.”
  그 순간 나는 내가 하효선 씨를 리좀 레지던스의 대표로만 알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에게 나의 아트비디오 프로젝트의 주인공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우리의 작업방법은 일련의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우리 사이에 신뢰 관계를 확립해야 했다. 나는 열정적이면서 영원한 한국의 가치들에 충직한 한 여성을 발견했다.
  이 예술 창작의 주제는 다름 아닌 자국의 현대사에서 한 여성이 지나온 도정이다. 

L’origine du projet

  Je suis un artiste franco-péruvien, basé à Paris. J’ai réalisé mes études à l’université de Lima et à l’université de la Sorbonne. Photographe, vidéaste et cinéaste, je crée des œuvres artistiques partout dans le monde et dans une certaine manière, je suis à la recherche de moi-même.
  Par ailleurs, je suis fasciné par le continent asiatique, mon arrière-grand-mère était Chinoise. Dans ma première visite à l’Empire de Milieu, j’ai réalisé l’art vidéo Tianan men place sur les marginaux de Beijing, qui errent toute la journée dans cet espace symbolique. Puis dans The Glorious living révèle les jeunes femmes travailleuses d’origine philippine, qui se rassemblent dans la place financière hongkongaise pour oublier leur solitude.
  Quand j’ai reçu l’invitation de la part de Hou Sun Ha, directrice de la Résidence artistique Rhizome, ACC Project, c’était une grande chance pour moi : découvrir la Corée du Sud, un pays mystérieux et inconnu à mes yeux. Je l’ai accepté immédiatement.
  A mon arrivée à l’espace Rhizome, je découvrais le quartier Chang-dong. Cependant au début de mon séjour ce n’était pas évident, car mon handicap principal était la langue coréenne. La majorité des gens ne parlent pas l’anglais. En plus, j’étais égaré, toute la signalisation urbaine est en calligraphie coréenne, impossible de me repérer au début. 
  Ma priorité était de faire une immersion totale avec les gens de la rue. J’ai commencé à fréquenté le grand marché du quartier et petit à petit, je suis arrivé à communiquer avec les gens grâce à Google Translation. D’une certaine façon, je pense qu’ils me voyaient perdu et vulnérable. Ils me demandaient si j’étais cambodgien ou vietnamien. C’était amusant ! 

Dans le cadre de ma résidence artistique, Hou Sun Ha me proposait de faire une création vidéo sur le 40ème anniversaire du soulèvement démocratique de Masan. Au début, j’ai beaucoup douté, je ne connaissais pas assez l’histoire de la Corée du Sud. Je ne voulais pas faire une création superficielle sur un sujet éminemment politique.
  Alors, j’ai demandé à Hou Sun Ha de me mettre en contact avec une personne qui avait participé dans cet événement. Je voulais recueillir son témoignage pour créer le fil rouge du projet. Les jours passaient sans rencontrer la personne attendue. L’artiste Christine Cadours est une amie de longue date de Hou Sun Ha. Elle m’a dit : « tu es en face de ton personnage et tu ne te rends pas compte, Sun a participé dans le soulèvement du 1979 ». 
  A ce moment-là, je me suis aperçu que je connaissais seulement la directrice de la Résidence Rhizome. Donc, je lui ai proposé de devenir le personnage principal de mon projet artistique. 
  Notre méthode de travail, c’était une série d’entretiens pour apprendre à nous connaitre. Il fallait établir une relation de confiance entre nous. Je découvrais une femme fascinante et engagée avec les valeurs de la Corée éternelle. 
  Voilà le sujet de cette création artistique, le parcours d’une femme coréenne dans l’histoire contemporaine de son pays.

3세대
과거 : 돌아가신 아버지

나는 사라진, 현재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역사와 사회 정의를 위해 그의 참여를 뒤따른다는 선택을 한 딸 효선의 역사를 연결시키는 것을 핵심 줄거리로 삼고자 했다. 그녀는 나에게 3.15의거(1960년)를 얘기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라는 결과를 가져온 부정선거 반대를 위해 학생들이 주도했던 민중시위에 참가했다.
  효선의 가족이 만든 옛날 비디오 덕분에 그녀의 아버지는 우리에게 이 시대에 관한 자신의 기억을 얘기하게 된다. 나는 이 창작물을 돌아가신 그녀의 아버지의 기억에 헌정한다.

3 GENERATIONS
Le passé : le père absent

  J’essaie de reconstituer le fil rouge qui relie l’histoire du père disparu, à présent mort, à celle de sa fille Sun qui a fait le choix de suivre son engagement pour la justice sociale. Elle me raconte l’évènement du 3.15, (le 15 mars 1960). Son père avait soutenu le mouvement d’étudiants contre la manipulation des élections provoquant la chute de Syngmann Rhee.
  Grace aux archives vidéo de la famille de Sun, le père nous raconte son souvenir de cette époque. Je dédie cette création à la mémoire du père disparu.

현재
:  한 한국인 여성

이 창작 비디오는 하효선의 내밀한 초상을 추적한다. 그녀는 우리에게 자신의 가족사를 얘기하고, 이를 통해 한국의 60년 역사를 증언한다.
 그녀는 자신이 아버지의 측근이었고 아들이 없는 집안에서 자발적으로 아들 역할을 했고 그래서 가족의 일을 맡았던 것 같다고 말한다. 1979년 10월 먼저 부산에서 이어서 마산에서 대학생들이 박정희 독재 체제를 반대하는 시위를 일으킨다. 3.15의거가 있은 지 19년 후, 마산은 다시 반정부는 시위의 중심지가 되었다. 당시 효선은 23살의 대학생이었다. 그녀는 당시의 민주화 운동에 나름의 방식으로 적극 참여했다. 당시 반정부 학생들에 대한 탄압은 가혹하기 짝이 없었다.
  마산 시위가 있은 후 만 40년이 지난 2019년 10월 16일 마산의 경남대학교에서 정부 주도의 공식 기념식이 개최되었다. 나의 프로젝트에는 이 행사가 예견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효선은 가족과 함께 초대를 받았고, 나는 그녀의 어머니를 알게 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녀의 두 아이들 역시 이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왔다. 한국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삼 세대가 만난 것이다.  

Le présent: 
une femme coréenne d’aujour

  Cette création vidéo retrace le portrait intime de Hou Sun Ha. Elle nous raconte son histoire familiale et par sa dimension, elle témoigne de soixante ans d’histoire contemporaine de la Corée du Sud.
  Elle me précise qu’elle était la confidente de son père. Volontaire, elle avait l’impression qu’elle était un garçon manqué et s’occupait des affaires de la famille. En octobre 1979, les étudiants se révoltent contre le régime du dictateur Park Chung-hee à l’université de Busan et ensuite à l’université de Masan. Dix-neuf ans après le soulèvement du 3.15, Masan devenait le centre de la contestation contre le gouvernement. Devenue étudiante à l’université, Sun avait 23 ans à l’époque. Elle avait participé activement au mouvement. La répression fut féroce contre les étudiants.
  Quarante après le soulèvement de Masan, il y a eu une cérémonie officielle du gouvernement à l’Université de Masan, le 14 octobre 2019. Je n’avais pas prévu cet événement dans mon projet.
  Donc, j’ai eu la chance de rencontrer le Président de la République de la Corée du Sud, Moon Jae-in. Sun était invitée avec sa famille, j’ai eu l’honneur de faire la connaissance de sa mère. Ses deux enfants sont venus de Séoul pour participer aussi à la cérémonie. Les trois générations se sont rencontrées pour rendre hommage à la Corée du Sud.

1980년 5월 18일 광주 학살과 뒤이은 사회적 위기들로 점철된 한국 정치의 혼란스러운 몇 년이 지난 후 효선은 남편(서익진)과 함께 두 아이를 데리고 프랑스 유학을 위해 조국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효선의 외국 생활은 20년 동안 계속된다. 그녀는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외국에서 고국을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나는 그녀와 동일한 감정을 느낀다. 나도 프랑스 거주를 위해 조국 페루를 떠나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효선과 그녀의 가족은 프랑스를 잘 아는 한국인이 되었다. 그들은 두 개의 문화,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 사이에 있다.
  역사적 지표들의 제공과 함께 기억의 시(詩)의 창작에 몰두하기 위해 <3세대>는 다큐멘터리가 중단된 곳에서 시작하며, 유사한 사고를 통해 개인이 자신의 개인사와 이를 통한 ’사회의 역사‘에 대해 맺는 복잡한 관계를 해석하고자 한다. 
  나의 예술작업은 다큐와 아트비디오라는 두 개의 실천이 만나는 경계선에 위치한다. 나는 미시사와 거시사 사이에서, 시와 정보 사이에서, 세계에 관한 주관적인 관계와 이 관계를 조건지우는 역사적 및 사회적 객관성의 무게 사이에서 어떤 관계가 확립될 수 있는지를 탐험한다.

Après ces années troubles de la politique coréenne, le massacre de Gwangju, le 18 mai 1980 et la crise sociale de son pays, Sun et son époux Jin décident de quitter leur pays pour la France.
  L’exile de Sun va durer vingt ans. Elle m’avoue qu’elle avait besoin de s’éloigner de son pays et de le voir depuis l’étranger. Et moi, je m’identifie à elle aussi, car j’ai quitté le Pérou, mon pays natale pour la France.
  Aujourd’hui, Sun et sa famille sont devenus franco-coréennes. Ils sont entre deux cultures, deux mondes différents.
  Tant soucieuse de fournir des repères historiques que de s’adonner à la poésie du souvenir, Trois Générations commence donc là où le documentaire s’arrête et traduit au travers d’une pensée analogique toute la complexité du rapport de l’individu à son histoire, et par là même à l’Histoire.  
  Mon travail artistique se situant à la frontière entre ces deux pratiques du documentaire et de la vidéo d’art. J’explore les liens qui s’établissent entre la petite et la grande Histoire, entre la poésie et l’information, entre le rapport subjectif au monde et la part d’objectivité historique et sociale qui conditionne ce rapport.

미래
: 한국의 청년 세대

  <3세대>는 기억이라는 의무와 오늘의 한국 청년들에게 이 기억의 계승을 환기한다. 내가 연극 전공 학생인 채나라와 만난 것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매우 짧은 촬영 계획을 위해 이토록 이상적인 인물을 내가 의도적으로 찾았던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어느 날 우리는 리좀 주변에 있는 한 시장에서 그야말로 우연히 만났다. 나는 그에게 배역을 제안했고 그는 주저 없이 수락했다. 그는 효선의 아버지의 증언을 해석했는데, 이는 그에게 하나의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1960년대에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 중 하나였다. 박정희 독재는 민중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국을 경제적으로 근대화된 나라로 만들었다. 오늘날 한국은 신흥국으로 되었고, 신자유주의의 모델 국가가 되었다. 
    한국 청년들에게서 내가 받은 인상은 그들이 과도한 개인주의에 물들어 있으며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직업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구 세대의 장삼이사들의 기억의 전승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들이 한국의 위대함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켰기 때문이다.  

Le futur
: la jeunesse coréenne

  3 Générations évoque le devoir de mémoire et sa transmission aux jeunes coréens d’aujourd’hui. Ma rencontre avec Chae Nara, étudiant de théatre, était magique, dans le sens que je ne trouvais pas ce personnage idéal pour un planning de tournage très serré. Soudain, on s’est rencontré par hasard au marché du quartier. Il a accepté tout de suite ma proposition. Il a interprété un témoignage du père de Sun qui devenait un défi pour lui.
  Dans les années 60, la Corée du Sud était un des pays le plus pauvre de la planète. La dictature de Park Chung-hee met en place la modernisation économique de la Corée, en sacrifiant les classes populaires. Aujourd’hui il est devenu un pays émergent, un modèle du néolibéralisme. 
  C’est ce qui me frappe chez les jeunes coréens, c’est leur individualisme exacerbé, l’obsession de la réussite professionnelle à tout prix. C’est pourquoi je souligne la transmission de la mémoire des anciens, ces hommes et ces femmes, qui se sont sacrifiés pour la grandeur de la Corée du Sud.

한국 예술인들과의 만남

나는 한국 예술인들과 함께 <삼 세대>를 구상하고 실현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의 예술 세계를 나의 프로젝트 안에 통합시키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나는 예술적 열정이 번쩍거리는 한 나라에서 레지던스에 참가하는 호기를 가졌다. 그래서 이러한 혼합 작품의 제작은 나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먼저 하효선이다. 그녀는 배우이자 프랑스를 잘 아는 한국의 지식인이다. 그녀와 같이 일하게 된 것은 나에겐 행운이다. 그녀는 참여적이고 페미니스트이자 비전을 가진 여성이다. 게다가 에스빠스 리좀의 경영자로서 그녀는 어떤 의미로는 나의 보조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또한 내가 프로젝트의 다른 참가자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통역사 역할도 했다.
  내가 아티스트 박영제를 만난 것은 하나의 계시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 영화의 도입부를 한국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전통 잉크를 사용하는 한국 서예의 세계 안에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나는 한국의 전통음악에 항상 감탄한다. 하지만 나는 한국의 전통음악과 서양음악 간의 퓨전을 원했다. 내 영화의 주인공은 한국과 프랑스라는 두 세계 사이에 있는 여성이다. 그래서 나는 신근영의 멋진 멜로디를 선택했다. 나는 그의 음악을 2019년 10월 27일 에스빠스 리좀에서 외국인 예술인 레지던스를 마감하는 집단 전시회의 오프닝에서 처음 들었다.   
  그리고 최정민 감독은 영상기술 자문 역할을 했다. 그가 데리고 온 카메라맨 박영락 덕분에 이 창작 비디오를 위한 멋진 이미지들을 촬영할 수 있었다.  

Ma rencontre avec les artistes Coréens

  J’ai conçu et réalisé 3 Générations avec les artistes coréens, car je voulais intégrer leur univers artistique dans mon projet. J’ai eu la chance de faire ma résidence dans un pays, où l’effervescence créatrice est fulgurante. C’est pourquoi c’était très important pour moi de faire cette œuvre mixte.
  D’abord avec Hou Sun Ha. Elle est une artiste et une intellectuelle franco-coréenne. C’est une chance pour moi de travailler avec elle, une femme engagée, féministe et visionnaire. En plus d’être la directrice de l’espace Rhizome, elle est devenue mon assistante en quelque sorte. Elle était ma traductrice avec les autres participants du projet.
  Ma rencontre avec l’artiste Park Young-Je était une révélation, car je voulais faire une introduction du film dans l’univers de la calligraphie coréenne à travers de l’encre traditionnelle, qui symbolise l’identité du peuple coréen.
  Par ailleurs, je suis toujours émerveillé par la musique traditionnelle coréenne, cependant je voulais une fusion entre cette musique et la musique occidentale. Mon personnage principal c’est une femme entre deux mondes : la Corée et la France.  C’est pourquoi j’ai choisi la mélodie superbe du compositeur Shin Keun-Young. Je l’ai découvert pour la première fois pendant le vernissage de l’exposition collective à la fin de la résidence des artistes étrangers à l’espace Rhizome, le 27 octobre 2019.
  Par ailleurs, le réalisateur Choi Jeong-Min était mon conseiller cinématographique et grâce à lui, le cameraman Park Young-Rack a tourné des images superbes pour cette création vidéo.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카르도바박물관장 파트리시아 모레이라 역시 에스빠스 리좀의 국제 레지던스에 참가한 인물이다. 나는 이미 아르헨티나에서 그녀와 같이 작업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3세대>의 를 지키는 경찰서장이 되었다. 

  Patricia Moreyra, directrice du Musée de la Carcova, Buenos Aires, était résidante aussi à l’espace Rhizome. Nous avons déjà travaillé ensemble en Argentine. Elle est devenue la commissaire de 3 Générations. 

엔딩 크레딧

[감독]
Santi Zegarra 산티 제가라
[출연] 
하상칠, 하효선, 채나라, 박영찬, 진이문, 박영제
[이미지]
Santi Zegarra 산티 제가라, 박영락
[포스트 프로덕션]
Miguel Izaga 미겔 이자가
[음악]
신근영
[큐레이터]
Patricia Moreira 파트리시아 모레이라
[감사]
최정민, 신을순, 서익진, 서재우, 서세경
Christine Cadours 크리스틴 까두르
권유리, 심재묵, 강애림, 김현주, 이수현

에스빠스 리좀
리좀 국제 레지던스
창동예술촌